수성구스토리텔러

수성구 문화탐방-하효자 정려각을 가다~

감나무임 2015. 1. 6. 18:59

하효자정려각(夏孝子旌閭閣)

 

1. 지정번호: 대구시문화재자료 제18호

2. 지정일: 1989년 6월 15일

3. 소유자 및 관리자: 달성하씨종중

4. 소재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389-1번지

5. 시대: 고려, 조선

6. 크기: 정면1칸, 측면1칸

 

 

 

 

 

 

7. 유적 개요: 대구 경북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정려각으로 1327년 고려 충숙왕이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하광신(夏光臣)‘의 지극한 효행을 듣고 그가 살던 마을에 ‘이부시랑하광신지려(吏部侍郞夏光臣之

 

 

 

閭)라는 현판을 붙인 정문(旌門)을 세우게 하고 그의 자손들에게는 대대로 부역을 면하게 하였다. 이러한 제도는 조선시대에도 계속되었으며 고종 6년(1869년) 그의 자손들에게 세금과 부역을 면제시키라는 공문이 내려왔고 그 공문은 지금도 보관 중이다.

정문(旌門) : 충신 · 효자 ·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해 그 집 앞에 세우는 붉은 문

 

 

8. 하광신: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하광신은 고려 명종때 사람이며, 달성 하(夏)씨이다. 달성 하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대도독이었던 하흠(夏欽)인데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정착하였다. 이후 그의 아들 하용(夏溶)이 고려를 침공하는 오랑캐를 무찔러 큰 공을 세우자 조정에서 달성군(達城君)에 봉했는데 이때부터 하씨들이 대구 부근에 많이 살게 되었다. 하광신은 달성군에 봉군된 하용의 손자로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고 3년동안 시묘(侍墓)하였다.

시묘(侍墓):부모(父母)의 거상(居喪) 중(中)에, 그 무덤 옆에서 막을 짓고 3년 동안 사는 일

 

 

9. 정려각은 처음에 달성 하씨의 종산(宗山)인 대봉동 수도산 부근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일족이 왜병들에게 학살되고 전답과 산들이 소실될 때 함게 불에 타 없어지고,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하인경만 살아남게 되었다. 정조 5년(1781년) 만촌동 형제봉 기슭에 중건한 정려각도 일제감정기 시절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헐리고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현재 만촌동에 살고 있는 달성 하시들이 매년 돌아가면서 유사(有司)를 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단칸 건물로 홍살창으로 되어 있으며 중앙에 정려비가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조선 후기 정려각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정려(旌閭): 충신(忠臣)ㆍ효자(孝子)ㆍ열녀(烈女) 등(等)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表彰)하는 것

 

10. 효(孝)이야기: 하광신의 어머니가 몇 해째 중병이 들어 누워 있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아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치는 늦겨울에 병상의 노모는 갑자기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효성이 극진한 광신이었지만 기가 찼다. 엄동설한에 어디서 복숭아를 구해온단 말인가? 광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복숭아를 구할 방법이 없어 마을 뒷산에 올라가 자기의 효성이 부족함을 한탄하고 있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곁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호랑이 한 마리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호랑이는 덤벼들지 않고 자기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을 해 보냈다. 광신은 영문도 모른 채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호랑이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하여 어느 산골 외딴집에 도착하였다. 광신이 이상하게 여겨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의 문을 두드리니 막 제사를 마친 제사상 위에 복숭아가 눈에 띄었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 사정을 이야기한 광신은 복숭아 한 개를 달라고 간청했다.

집주인은 광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깜짝 놀라며 매년 집주위 산에서 자생하는 산 복숭아를 몇 접씩 따다가 식구가 먹고 그 중 싱싱하고 좋은 것을 골라 두었다가 부모 제사때 써오는데, 그것은 돌아가신 부모가 복숭아를 특히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른 해 같으면 저장해둔 복숭아가 겨울을 지나는 동안 대부분 썩고 한 두 개 겨우 쓸까말까 했는데, 금년에는 성한 것이 여러개 있어서 그것을 모두 제사상에 올려놓았는데 하효자 같은 사람이 있아 하늘이 도운 모양이라고 감탄했다. 광신은 주인이 주는 복숭아를 받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한 후 어머니에게 갖다 드렸다. 그 뒤 어머니가 간호의 보람도 없이 세상을 떠나자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3년간 지성껏 시묘(侍墓)하였다.

 

*참고자료 : 수성구청HP, 수성의문화유산(대구수성시니어클럽), 수성구문화유적둘레길(수성문화원)

 

* 찾아가는 길 : 효목네거리에서 망우당 공원방면 우측 20M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