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여행

여행 ** 모명재) 대구 수성구 모명재 완전정복!!!!

감나무임 2015. 12. 19. 02:21

 

대구의 지명과 모명재의 주인 두사충은 인연이 많다.

임진왜란 때는 이여송장군을 따라, 정유재란 떄는 진린도독을 따라 원군 활동으로 조선에 왔다가

명나라의 정제를 미리 읽어 귀화를 한 인물로, 두 아들과 함께 대구에 정착.

경상감영공원 땅이 *하루천냥이 나오는 명당*이라고 해서 경상감영 땅을 하사받았으나

경상감영이 대구에 차려지므로 땅을 내어주고 대구읍성 남문 밖의 땅에 뽕나무를 심어 비단을 짜서 대구를 섬유도시의 근간을 이루게 한 인물.

명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을 잊지못해 호를 모명으로 하고, 매월 초하루 보름 두번씩 명나라를 기리는 재를 지냈다는 최정산 아래의 대명단 터로 인해

대명단 아랫동네를 대명동이라 불리게 했다는 인물.

풍수의 대가로 워낙 풍수를 살피러 다녀서 권문세가들의 묘자리를 찾아줬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데, 본인이 죽을 자리를 찾아 두었따는 수성구 성동 고산서당 뒸쪽이 자손발복하는 명당이라고 봐 두었으나 험한 재를 세번씪이나 올라가다가 담이 끓어 결국 포기하고 형제봉 아래에 묘자리도 괜찮다고 일러, 지금의 모명재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담이 끓어 못 넘어갔던 고개를 담티고개라 했으니 실로 두사충이란 인물로 대구와 얽힌 인연이 깊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남부정류장 뒤편이라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해서 만촌역에 내려 찾아갈 수도 있다. 안기부가 앞산 밑에서 이사를 해서 모명재 옆 길로 들어가는 곳이 있다.

 

주변에 무열대 부대가 있어서 부근은 개발 제한구역인데, 이부근이 그린벨트 해제가 되었는지 최근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명정각은 두사충의 7대손 두한필의 효행이 알려져 조정에서 정려를 내린 정각이다.

 

 

모명재 바로옆의 보림사에서 세운 건물을 수성구청에서 한국 전통문화 체험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타겟이라 했으나, 지금은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등의 한국전통문화 체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모명재를 구석구석 살펴 보자. 모명재 담을 쌓는데, 수령이 오래된 팽나무가 있어 팽나무를 살려둔채 담을 쌓아 다행스럽게 팽나무는 지장없이 수령을 다하고 있다.

 

수성구에서 모명재 부근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산 단풍 등 두사충이 중국인이란 것을 감안하여 중국 나무들을 특별히 많이 조성해 두었다.

 

 

 

 

 

 

 

 

두사충의 자손 중 두병선이란 분이 일본에 살면서 모명재를 다듬는데 큰 돈을 희사했다고 한다. 해서 모명재 안에 두병선에 대한 가계도 등이 기록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모명재에서 골목을 더 들어가면 마을 깊이에 보림사란 절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절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물이다.

 

 

 

 

 

 

 

모명재의 대문에 걸린 만동문 현판을 두고 수성구 스토리텔러 선생님이 생활공감 모니터단들에게 해설을 해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명재 뒤를 돌아 형제봉 산길을 조금 오르면 두사충의 묘와 7대손 두한필의묘가 있다.

 

 

 

 

장군의 모습을 한 무인석과 석양(돌로 깎은 양)을 배치해 두고 중국서 가지고 온 청석의 석상이 있는 것이 보인다.

 

 

 

 

 

 

 

 

 

 

 

대구의 역사가 있는 모명재 뒷길에 조성된 올레길도 걸어봄직하다.

수성구의 주민들에게 더할 수 없는 공원으로 변해가고 있는 모명재 길이다.